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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금기에 도전하는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 베토벤, 아인슈타인, 에드가 엘렌포우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바로 사촌하고 결혼한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신라, 고려의 수많은 왕도 다 사촌하고 결혼해 놓고 왜 우리만 안된다는 건데요?
일을 꼬아놓은 건 지랄 맞은 6.25면서 왜 나만 죽일 놈 취급하는 겁니까.
우리가 알고 시작했냐고요. "


공중파 드라마로선 그야말로 파격적인 소재인 근친 간의 사랑. 물론 그간 이 설정을 차용한 드라마가 많았기에 파격적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하지만, 개인적 입장에선 의붓남매간의 사랑은 식상할 대로 식상했기에 그간의 드라마들에 대한 '근친상간 논란'은 놀랍지도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는 왜 저걸 두고 근친상간 운운하며 논란을 일으키나 싶었다. 아, 내 도덕관념은 정상범위에 속하니 태클은 사양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90일 사랑할 시간', 통칭 구사시는 할머니가 같은 사촌 남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처절한 사랑을 그리고 있기에 '파격적'임에 틀림이 없다.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근친에 관해선 어떤 나라보다 금기시하고 뒤틀린 윤리관이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것도 공중파 드라마가 혈육 간의 사랑을 온 국민이 시청 가능한 시간대에 방영할 줄. 이걸 두고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고 하던가. 언론이 연방 근친상간 논란을 조장하고 그에 편성해 저질드라마라는 오명도 얻은 걸 보면 개벽하려다가 그대로 사장 당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시대가 바뀌기는 했나 보다.

구사시는 사촌 간이라는 위험천만한 설정에다 불륜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더한 멜로드라마다. 소재만 본다면 자극성을 노린데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지탄받아 마땅한 드라마지만ㅡ그래서 일부에선 저질이라는 말도 나오지만ㅡ보지도 않고 평가절하하기엔 드라마가 정말 아깝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빼어난 영상미에다가 주연배우는 물론 조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속도감 있는 진행속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설레게 하여 뒷내용이 궁금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보게 되면 알게 되겠지만, 근친 등의 소재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수록 어째 최루성 멜로와는 거리가 멀어졌던 나였는데 이 겨울의 문턱에서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얄미운 드라마가 바로 구사시다. 또한 '그 여자' 이후 나를 몰입하게 한 대단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저조한 시청률은 시청률 조사기관의 음해라는 말까지 나돌고, 낮은 시청률로 말미암아 조기 종영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고, 여럿이 보는 것보다 외로이 감정에 젖어들고 싶은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윤리와 금기에 전면 승부를 던져 그 논란과 비판은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지속하겠지만,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조차 따뜻하게 느껴질 그들의 눈물겨운 사랑은 현재진행형 마라톤이다. 아직 초반이기에 남은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부디 초심을 잃지 않고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살아남는(...) 드라마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그 논란과 비판을 잠재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by 아르튀르 | 2006/11/26 20:59 | review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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